청년, 난민 되다

06청년난민되다-표지-입체

집은커녕 방 한 칸조차 버거운 세대
집을 잃은 청년들은 어떻게 나라를 포기하고 미래를 포기하는가

독립 언론 미스핏츠가 타이페이, 홍콩, 도쿄, 서울에서 만난
청춘의 방, 청춘의 삶들

청년 난민 시대의 도래
주거는 어떻게 청년 세대의 부비 트랩이 되는가

어쩌면 우리에게 절망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 스는 곰팡이 같은 것 아닐까. (…)
이전 세대가 오르막길을 오르는 고단함을 짊어졌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내리막을 마주하고 있다. _프롤로그 중에서

누구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내 집 마련’은 일생의 숙원이고 성취였다. 그러나 집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조차 버거운 청년 세대가 도래했다. 여러 통계들은 이 책 《청년, 난민 되다》의 저자들이 왜 청년의 주거, 그중 서울의 대학생 주거 문제에 주목하는지 보여준다.

-전국 대학생(219만) 중 약 40%(88만 5천여 명)이 출신지와 다른 지역에서 대학에 다닌다. 그중 기숙사 수용 인원은 35만 7천 명, 서울 소재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10.4%에 불과하다.
-전 연령대에서 서울에서 나가는 인구가 많은 반면 유일하게 유입 인구가 많은 연령대가 20대다.
-서울의 주거 빈곤(주택법에 규정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거주하는 상태)인 청년은 2010년 기준 52만여 명, 전체의 22.9%다.

등록금은 1년에 천만 원에 육박한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의 종수가 늘어날수록 이를 준비하는 데 드는 돈 역시 늘어난다. 수도권 대학 원룸의 평균 보증금은 1418만 원, 월세는 42만 원이다. 주거비를 스스로 마련하려면 수업시간보다 긴 시간을 노동해야 한다. 그렇게 얻은 방도 치솟는 주거비에 맞춰 6개월, 1년 단위로 떠돌아야 한다. 주거는 이렇게 청년에게 현실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덫이 된다.

언제든 박스 몇 개에 나눠 담을 수 있도록 인생을 정리한다는 것. 원치 않지만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공간을 빌릴 자본이 없는 청년은 잠재적 난민이다. 원치 않는 이동을 반복하고, 안전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떠돌면서 소진된다. 불안과 상실을 대가로 꿈을 좇을 기회를 얻고, 질 낮은 생활을 감수하는 상황이다. 268쪽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주거의 조건도 있다. 통학에 다섯 시간이 걸리지만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기숙사, 기숙사나 공공주택을 늘리려 해도 극렬하게 반대하는 지역 주민, 집 열쇠를 따로 갖고 언제고 방에 들어오는 집주인, 옆방 소음을 늘 듣고 살아야 하는 조악한 원룸…….
이것은 과연 한국만의 현실일까. 벗어날 순 없을까. 20대 독립 언론 미스핏츠는 그 답을 직접 찾기로 했다. 2015년 초 타이완, 홍콩,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 청년들의 집을 찾아갔고 이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들었다. 타이완 새둥지운동, 홍콩 우산혁명에 참여한 청년 단체도 만났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주거 실험을 하는 긱하우스, 청년 주거자립 지원 단체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직접 주거 대책 포럼을 열기도 했다. 《청년, 난민 되다》는 이렇게 지난 1년 가까이 직접 겪고 듣고 만난 청년 주거의 절망과 희망에 관한 기록이다.

동아시아에서 목격한 청년의 방, 청년의 삶
1인칭 시점으로 겪고 보고 기록한 청년 난민의 실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저자들이 다음 뉴스펀딩에 청년 주거를 취재해 올렸을 때 이와 비슷한 악플이 여럿 달렸다.) 그런데 이 말은 전제가 충족될 때 성립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과연 지금 청년들에게 청춘은 그런 것이라고, 고진감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담긴 청년들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비단 한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홍콩은 잘 교육된(well-educated) 청년들을 잃고 있다.’(127쪽) 저자들이 홍콩의 운동단체(SoCO)에서 들은 이 말은 동아시아 청년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주거 문제는 이들의 삶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90년 치 월세를 모아도 살 수 없는 타이완의 집값, 소득은 떨어지는데 나날이 치솟는 홍콩의 주거비, 프리타나 파견직 같은 불안정 노동자는 신원 보증이 안 돼 방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도쿄의 주거 시스템……. 이 변수들이 맞물리면서 인생의 설계도를 그리는 일은 요원해진다.
원래 집 한 채인 공간을 여러 개 방으로 쪼갠 타오팡(타이완), 큐비클(홍콩), 탈법 셰어하우스(일본), 하숙형 원룸(한국), 무엇이라 불리든, 이 기형적인 주거 공간이 묘하다 싶을 만큼 공통적으로 청년에게 주거 공간으로 주어진다. 그 안에 ‘편의시설’이 하나씩 놓일 때, 볕 한 줌을 원할 때 부담해야 할 비용은 늘어난다. 아니면 가진 비용에 맞춰 그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포기하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직장을 구하는 것, 집 구할 돈을 모으는 것, 가정을 지탱할 수준의 돈을 모으는 것이 이곳에서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경험으로써 확인될 때, 무언가를 포기하게 된다.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바라던 것 중 일부를 ‘포기’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한국과 홍콩에서 ‘N포세대’가 탄생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은 점점 늘어간다. 또는 그렇게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어떻게든 실현해보기 위해 ‘이곳’이라는 조건을 버린다. 그렇게 우리 청년들은 한국에서도 홍콩에서도 무언가 많이 포기하거나, 탈출을 꿈꾸며 ‘탈조선, 탈홍콩’을 이야기하게 된다. 126쪽

《청년, 난민 되다》는 이렇듯 수치와 통계로 다 담을 수 없는 청년 주거의 현실을 저자들 자신의 1인칭 경험담과 직접 만나 경청하고 또 목격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또렷하게 들려준다. 당사자인 청년들의 이야기와 오랫동안 대안을 모색해온 단체, 각종 자료와 자신들의 경험담을 교차해 이 현실의 의미를 탐색한다.
저자들이 동아시아 도시에서 만난 청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우리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매매를 선호해 집을 임대하기 꺼리는 타이베이, 10년 동안 공공주택에 청년 세대는 단 한 명도 입주하지 못한 홍콩, 낮아지는 노동의 질에 블랙기업의 횡포가 맞물려 도시에 사는 게 ‘무리’인 도쿄의 삶. 그러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소유자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삶의 기반을 무시한 채 노동문제로만 청년 문제를 접근하는 정부까지.
저자들이 이곳에서 만난 문제가 한국사회와 교집합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우리 사회가 탈홍콩을 꿈꾸듯 탈조선을 꿈꾸는 게 당연한 게 아닌지, 소득 2백만 엔 이하 청년의 77퍼센트가 부모에게 ‘기생’한다는 일본처럼 활력을 잃은 사회가 되는 게 아닌지를.

‘불행 배틀’대신 가느다란 희망의 대안을 모색하다

저자들이 타이베이, 홍콩, 일본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누가 더 불행한지 목격하고 그래서 더 나은 환경에 안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벌어진 희망의 몸부림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그들과 우리 사회 청년이 놓인 처지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그들에게서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이베이 시민 2만 여명은 2014년 10월 한 채에 수백억을 호가하는 디바오 지구 렌나이 아파트, 우리로 치면 타워팰리스 같은 호화 아파트 앞에 드러누웠다. ‘새둥지운동’이다. 여기서 이들은 주거의 권리, 부동산 세제 개편, 공공주택 확충 등 다섯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곧이어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 대신 이들의 요구안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홍콩의 ‘우산혁명’ 당시에도 민주화라는 큰 구호 아래에는 주거의 문제, 청년의 문제를 들고 나온 이들이 있었다. 홍콩 청년들의 불만이 무엇인지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는 장기 침체 이후 청년 문제(히키코모리, 프리타, 니트족)를 자생적으로 해결하려는 여러 형태의 셰어하우스와 지원 단체들이 생겨났다. 주거가 삶의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 아래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혹은 자립이 필요한 사람을 모아 주거부터 해결하자는 움직임들이다.
해외의 사례들을 그저 부러움의 시선으로 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서 새로운 방식의 주거 운동을 벌이는 각 대학 총학생회, 청년 단체, 사회주택협동조합 등을 만나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 모색했다. 현재 시행 중인 공공주택정책에 허점은 없는지도 꼼꼼하게 살피고 대안들을 이 책에 담아냈다.
저자들은 ‘주거가 정치’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세상을 리셋하자고 말하는 대신 실효성 있는 정책, 여기에 힘을 싣는 정치가 뒷받침된다면 청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도, ‘청춘의 방’을 삶의 근거지이자 희망의 산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흙수저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이 보드게임은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플레이어’와 ‘흙수저 물고 태어난 플레이어’를 가정하고 시작한다. 금수저가 기본으로 가진 아이템은 집 세 채와 유동자산 칩이다. 두 채는 임대 수입을 얻는 수단이다. 흙수저는 초기에 유동자산 칩만 가지고 시작한다. 게임하면서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각 플레이어는 매달 칩으로 월세를 내고, 월세를 받고, 대학에 갈지 말지, 취업을 할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일종의 ‘인생 게임’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면 금수저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흙수저의 ‘좌절’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 턴마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자신들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그에 따라 이 모든 선택의 질서를 바꾸는 데 있다. 이것이 이게임의 핵심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게임의 법칙 자체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311쪽

저자 소개

미스핏츠 세상의 모든 핏(fit)하지 않은 목소리, 미스핏츠는 기성 언론의 틀에서는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양한 ‘미스핏한 사람들’을 조명하고자 2014년 8월 만들어진 독립 언론이다. 주요 사업으로 ‘노답 청춘, 집 찾아 지구 반 바퀴’다음 뉴스펀딩,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 활 ‘잡것들’등의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구글 뉴스스탠드, 카카오 1boon, 카카오 스토리볼 등 콘텐츠 제공 계약을 맺고 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통해서 20대의 시각으로 본 다양한 이슈들로 주목받고 있다.
http://misfits.kr

이 책의 취재 및 집필
조소담 총괄팀장, 국내/일본 취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재학 중.
박진영 타이완/홍콩 취재. 영상팀.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중.
정세윤 타이완/홍콩 취재. 미스핏츠 편집장.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신문방송학과 재학 중.
구현모 국내 취재.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재학 중.

 

차례

프롤로그

chapter 1 타이완
이 집값은 미쳤다
그래서 그들은 변두리로 갔다
새둥지운동 그 이후

chapter 2 홍콩
주거 지옥 홍콩에서 살아남는 법
위너만이 살아남는 공공주택
잘 교육된 젊은이들이 떠나는 나라

chapter 3 일본1
집이 삶을 삼킨다
집값에 치이고, 블랙기업에 치이고
인터뷰 | ‘자유와 생존의 집’ 키쿠치 켄·에베 가즈히데

chapter 4 일본2
일본에서 만난 청년들
삶을 담는 새로운 그릇을 빚는 사람들
인터뷰 | 셰어하우스 중개 전문 ‘히츠지 부동산’ 기타가와 다이스케

chapter 5 한국의 청년 난민
내게 관 같은 원룸
기숙사 전쟁
어쩔 수 없는 동거, 셰어하우스
주거가 삼킨 현재 그리고 미래
끊어진 사다리 아래에서

chapter 6 해결의 실마리들
학생 사회에서 내놓은 대안들
청년에게 주택을, 주택에 상상력을

에필로그
감사의 말
주석

 

본문 발췌

때로는 (혹은 대부분은) 들키거나 공유되고 싶지 않은 모습과 소리를 숨길 권리는 월세 5만 원, 10만 원 앞에서 손쉽게 바스라지고는 한다. 월세 5, 10만 원이 아니면 보증금을 천만 원, 2천만 원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각종 ‘옵션’과 방의 크기, 볕, 방이 ‘가운데방’인지 아닌지에 따라 타오팡 값은 천차만별이다. 46쪽

이롱이나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앞으로도 살고 싶지 않고 조금 더 안정적인 주거를 원한다고 해서 몇 년 후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리란 법 역시 없다. 모두 ‘안정적으로 주거를 하려면 집을 사야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집을 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서 오래도록 마음 편하게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해지는 날은 올까. 일단은 지금 머무는 공간, 내가 점유한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생길 때까지 1, 2년짜리 계약서에 도장을 또 찍고 또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49쪽

정기 수입의 3할이 꼬박꼬박 허공에 날아가지만 별 수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린위루 부부가 구매하려면 월세를 90년 치(90개월이 아니라 90‘년’) 모아야 한다. 아무리 연봉이 오르고 더 나은 직장을 찾는다고 해도 린위루 부부가 90년 치 월세를 모두 모아 이 집을 살 수 있을까. 린위루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린위루 부부는 매달 77만 원을 월세로 지불하고 그나마 시내의 괜찮은 집을 ‘빌릴 수 있음’에 안도하고 있다. 55쪽

집주인에게는 거주 환경을 ‘임차인이 살 만 하게’ 만들어 임대시장에 내놓아야 할 어떤 의무도 없다. 집의 무언가가 망가지거나 전기, 수도에 문제가 생겨도 고쳐줄 의무가 없다. 주어진 조건에 순응할 사람을 찾아 집에 들이면 된다. 아니면 차라리 집을 비우는 편을 택한다. 이렇듯 ‘집’이라는 삶의 지지대를 빌리는 데 최소한의 규칙조차 없으니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불만족스러운 관계가 되기 쉬운, 아슬아슬하고 더욱 임시적인 주택 임대시장이 탄생한다. 73쪽
중장년에서 시작해서 중장년으로 끝나는 사이클 속에서 우리 세대가 언제쯤 ‘기대지 않는 주거’를 실현할 수 있는 걸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그저 ‘부모님’과 ‘자식’이 아니라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기대야만 주거 문제를 간신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치욕적이다. 77-78쪽

반지층이나 옥탑방이 ‘저렴’이나 ‘낭만’ 따위로 포장된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삶의 우울함, 찌는 듯 내리쬐는 햇볕. 임시 주거 공간의 부실함을 피해 ‘괜찮은 집’을 찾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몇 주고 발품을 팔아야만 하고, 그렇게 간신히 얻은 집도 1년, 길어도 2년 후면 다시 짐을 싸 들고 나갈것을 걱정한다. 주거 공간에 대한 걱정을 머릿속에 채우고 살면서 나아갈 미래와 꿈을 그릴 수 있을까. 새로 방을 찾을 때마다 타인의 자취가 보이지 않도록 집주인에게 도배와 장판을 해달라고 아득바득 싸우면서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86쪽

이 정책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그나마 (청년의 입장에서) 3~4년을 공공주택 대기자로 기다리면 입주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물거품이 됐죠. 바뀐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30세 이하 1인 가구 중에서 공공주택을 얻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어요. 이런 상황 때문에 젊은 층 사이에서는 ‘공공주택을 가진 사람은 위너(winner)’라는 표현을 하기도 해요.” 115쪽

수도권과 간사이 권역에 거주하는 연 수입이 2백만 엔 미만인 20~39세 미혼 청년 1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비율이 77.7퍼센트였다. 자택을 소유한 부모가 주거와 노동 조건이 불안정한 청년층을 흡수하고 있다. 어느 보고서에서는 이를 집 있는 부모에게 집 없는 자식이 ‘기생한다(parasite)’고 표현했다. 양쪽 모두 원치 않은 기생일 것이다. (…) 그렇다면 연 수입 2백만 엔 이하, 이를테면 ‘저소득 청년’이 일부만의 문제일까. 일본 청년 세 명 중 한 명이 연봉 2백만 엔 미만이다. 무직자는 제외한 수치다. 160쪽

나는 우리 세대의 수많은 청년이 ‘둥지로서의 집’을 열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집의 의미가 변했다. 집에 담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집을 소유하기보다는 빌리기를 택한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평생 갚는 삶을 택하려 하지 않는다. 내 친구는 주택 마련 자금을 저축하느니 “건담을 한 대 더 사겠다”고 말했다.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청년들이 많다. 열망하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 있다. 90년 치 월세를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는 타이완 청년들. 불안정 주거에 놓일까 봐 부모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일본 청년들.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진 삶의 비용과 싼 사람 값. 그러나 집도, 직업도, 삶도 분명 새로운 세대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을 필요가 있고, 그런 변화를 조금씩 청년들이 찾고, 만들어나가고 있다. 194쪽

이와모토 씨는 한국도 일본의 상황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쟁 사회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행복이나 충실감이 느껴지는 삶은 마음가짐이라든지 가족 관계, 내가 어떤 곳에 살고 있는지와 연결되어 있어요. 이런 것들이 같이 좋아지지 않으면 안 돼요. 사실 지금 일본 정부는 ‘경기를 좋게 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일하게 되면 이런 현상(청년의 자립 문제)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삶의 방식이라든가 주거,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211쪽

고시원에 사는 조신 씨는 창문이 없는 방에서 눈을 뜬다. 원룸형 하숙에 사는 배태웅 씨는 주인 모를 신발 더미 사이에 자신의 신발을 벗고 들어가 옆방의 소음 속에 잠을 청한다. 고시원과 원룸텔, 원룸형 하숙의 작은 방에서 눈 붙이는 하룻밤, 서른 밤 혹은 몇 년의 밤. 그렇게 청하는 하룻밤 수면은 마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한 끼 밥 같다. 235쪽


청년, 난민 되다
: 미스핏츠, 동아시아 청년 주거 탐사 르포르타주
미스핏츠(조소담, 박진영, 정세윤, 구현모) 지음 | 2015- 12-31 발행
152*225mm | 317쪽 | 15,000원
ISBN 979-11-952181-5-8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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