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불명예 50관왕 한국’
한국이라는 시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우리들의 행복하지 못한 시간을 직시하는 10개의 시선
10인의 학자, 활동가, 의사가 포착한 삶을 쥐어짜는 시간의 문제들
“우리는 왜 이것을 견디고 있는가.” 내년 미국 대선 후보 중 한 명으로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말이다. 그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빈곤해서는 안 된다.” 주 40시간, ‘9 to 5’, 이른바 ‘표준적인 노동시간’만큼 일하고도 그에 걸맞은 소득, 여가 등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2014). 그리고 인터넷에는 ‘OECD 불명예 50관왕’이라는 글이 떠돌아다닌다. 삶 만족도 최하위, 노동의욕 최하위, 고용 안정성 최하위, 산재 사망률 1위 등이다. 모두 우리 삶의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일, 노동과 관계가 깊다. 이렇듯 얼마나 일하는가(길이), 얼마나 쉴 틈 없이 일하는가(밀도), 일상 사회생활이 가능한 시간에 일하는가(배치) 하는 문제는 누군가의 삶 자체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에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시간 박탈, 시간 빈곤, 시간 기근, 시간 소외, 시간 불평등…….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이 책은 바로 삶을 쥐어짜고 소진시키는 시간의 문제를 담았다. 이 책에 담긴 10개의 글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단연 시간이다. 사회학, 의학, 경영학, 철학, 여성학 등의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시계를 직시한다. 필자들은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작동 원리 그 자체이자 상수로 자리 잡아 우리들의 생애와 생활을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이 ‘기본값’이 된 한국이라는 시계
우리는 어떻게 ‘정서적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는가
1960년대 이래 한국사회에서는 ‘언제, 얼마나 일하고 돌보고 쉬고 자기 시간을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은 ‘언제든, 얼마큼이든 일이 있다면 감사히 하라’라는 정명(定命) 앞에서 사회적 집합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없다. 오래 일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면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동시간은 절대적인 우위를 지닌 채 개인과 가족의 생활시간표에서 제왕의 지위로서 군림해왔다. – ‘5장 시간제 노동: 상상과 현실 사이’ 중에서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적인 시간 체제는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며 규제 대상이 아니라 구조화된 법․제도 아래 유지되었다. 이 체제를 마음껏 활용하는 기업 안에서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개발연대부터 노동자를 ‘수출 역군’ ‘산업전사’ ‘새마을 아가씨’ 등으로 부르며 미화하는 체제 속에서 근면, 성실이 제일의 가치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후 경험하고 목도한 수차례 경제위기는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출세, 성공, 생존하는 데 목숨을 거는 상태가 되었다.
10장을 쓴 강수돌 교수는 이를 ‘외적 강제를 내면화하면서 자기 고유의 느낌과 감정을 상실·억압하는 상태’, 즉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라고 지적한다. 개발연대 이후 시대를 막론하고, 또 생산 현장이건 최첨단 산업에 일하는 노동자건 상관없이 한편으로는 이렇게 빠듯하게 일하지 않으면 소득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 낙오하면 탈락이라는 강박 탓에 장시간 노동 사회를 ‘기본값’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중산층 가족부터 시간을 ‘꺾기’당하는 햄버거 집 알바까지…
숫자로는 담지 못한 구체적인 삶의 내면들
“그냥 제가 모든 걸 이해했어요. (웃음) 자본주의 사회라 어쩔 수 없는 걸 수도 있지만. (…) 저는 사치스러운 요구는 하지 않아요. (…) 저는 제가 더 많이 벌게 되지 않는 한 요구하지 않을 거예요. (…) 왜냐면 너무 힘들어해요. 제가 봐도 남편의 삶이 너무 힘들고.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는 삶이라서 집에 오면 완전 탁 놓고 쉬어야 돼요. 완전 소진해서 들어와요.” – ‘4장 장시간 노동사회에서 가족들의 생존기’ 중에서
장시간 노동 사회라는 문제의 귀결은 자칫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구호’로 직행하기 쉽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문제의 표피를 열어 당사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불러낸다는 점이다. 통계나 구호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삶의 내면이 10편의 글 곳곳에 담겨 있다.
학자금 대출과 대졸 이후 미래의 소득을 셈해 대학을 포기하고 콜센터 직원이 된 대학생, 패스트푸드점의 시급 ‘꺾기’ 관행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는 청소년, 우편물 배달 야간 조로 10년째 일하면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 연간 4천 시간을 일하다 결국 과로로 숨진 IT노동자……. 독자 자신 혹은 누구나 주변에서 접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기획한 노동시간센터는 2003년 발족되어 꾸준하게 노동자의 건강권을 연구하고 활동해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활동 초기부터 다양한 현장의 노동자들을 만나며 축적해온 이야기를 줄거리로 노동시간 문제를 현장감 있게 풀어나간다. 필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로써 노동시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등을 학문의 영역, 추상의 영역에서 삶의 영역, 구체의 영역으로 불러온다.
“알바하면서 좋은 성적으로 대학 졸업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봤자 요즘 대졸자 월급 2백만 원 못 받는 곳은 또 얼마나 많다구요.” 홈쇼핑 전화 상담 업무가 입에 밴 탓인지 지은은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더 말하는 습관이 있다. 지은이 결국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홈쇼핑 야간 근무를 선택한 것은 대학을 더 다닌다면 학자금 대출 금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아르바이트와 학교 수업을 병행하며 버텨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래봐야 투자가치가 마이너스라고 셈을 마쳤기 때문이다. – ‘1장 시간을 강탈하는 부채’ 중에서
‘36개월 무이자 할부’ ‘O2O 서비스’ ‘과로사’ ‘레컨 혹은 꺾기’…
‘시간을 위한 삶’ 대신 ‘삶을 위한 시간’이 되려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비단 노동시간만이 아니다. 우리 삶은 생애주기라는 긴 시간의 흐름에 놓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개인들은 각종 부채부터 ‘36개월 무이자 할부’까지 신용 거래 속에서 ‘신용등급 관리 십계명’에 맞추어 스스로 생활습관을 통제하기에 이른다. 또 디지털 모바일 기술 발전에 따라 개인은 언제 어디서고 일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공동체보다는 가족 단위의 생존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한다. 임시직, 저숙련 일자리를 떠받치는 청소년이나 중장년의 노동은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언제고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시간을 둘러싼 제도적 조건은 퇴행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2007년 이후 과로사(직업성 뇌혈관․심장질환 인정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 과로사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또 어느 생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공장 가동을 중단한 노동자는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법정 근로시간이 있어도 세계 최장 노동시간의 불명예를 안고 있음에도 ‘법정’ 근로시간 자체가 더 길어질 조짐이다.
이 책 전체에서 읽을 수 있는 노동시간과 삶과의 관계를 통해서 저자들은 이런 현상이 과연 온당한지 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 체제를 급속하게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안에서 안전판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렇듯 이 책은 의학, 사회학 등 전문가와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활동가들이 함께 쓴 책답게 한국사회를 작동시키는 시간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밝히는 동시에 그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법제도적 문제를 들춰낸다. 이로써 독자들에게 삶을 이해할 틀을 건네는 동시에,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상식’의 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저자 소개
노동시간센터 노동시간은 노동자 개인 혹은 일터를 넘어 가족과 주변의 삶, 나아가 개인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는 노동시간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일터와 공동체를 넘나들며 어떤 효과를 내는지 연구하고, 바람직한 노동시간 변화란 무엇인지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전주희 수유너머N 연구원. 인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시간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와 대중의 역동성을 연구하고 있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노동 및 여가시간, 일상의 여가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과로사회》《잃어버린 10일》을 썼다.
정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청소년 노동과 이주노동을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다.
김보성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노동시장 불평등, 노동자 가족의 계급의식 등을 연구하고 있다. 《엄마의 탄생》(공저)을 썼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서강대 사회학과 박사. 《일, 가족, 젠더》《젠더와 사회》《가족과 친밀성의 사회학》《여성과 일》(이상 공저) 등을 썼다.
정하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비정부기구학 석사. 재생산 노동, 노동안전을 연구하고 있다.
김형렬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부교수. 연세대학교 보건학 박사. 장시간 노동과 심혈관계 질환, 장시간 노동과 정신건강, 교대제와 건강 영향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직업병학》《직업환경의학》 (이상 공저)을 썼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교실 부교수. 한양대학교 의학 박사.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 노동자 건강권, 인권으로서의 안전을 연구하고 있다.
강수돌 고려대(세종) 경영학부 교수. 《여유롭게 살 권리》《자본주의와 노사 관계》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외에 여러 책을 썼다.
차례
서문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1장 시간을 강탈하는 부채 / 전주희
2장 디지털 모바일 기술, 만인을 자영화하다 / 김영선
3장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청소년의 노동 / 정재현
4장 장시간 노동사회에서 가족들의 생존기 / 김보성
5장 시간제 노동: 상상과 현실 사이 / 신경아
6장 올빼미가 사는 법: 야간 노동과 한국사회 / 정하나
7장 과로사 이야기 / 김형렬
8장 오래 일하는 당신 / 김인아
9장 노동자의 노동시간 통제 / 최민
10장 탈산업시대 근면 신화의 의미 / 강수돌
본문 발췌
금융의 시간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간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이러한 사회는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갚아야 할 부채가 얼마 남았고, 더 빌릴 수 있는 여지가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미래의 시간 앞에 놓인 개인은 미래가 안정적이길 바란다. 미래가 예상을 벗어난 모험의 시간이 되기보다는 연체 없는 분할 납부가 가능한 시간이길 희망한다. 그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개인의 현재는 더욱 제약될 수밖에 없다. 37
전통 사회에서는 작업이 자연 리듬에 맞춰 진행되었다. 정해진 작업 그 자체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지 작업을 언제까지 얼마 이상을 마무리해야 하는가는 그렇게 큰 변수는 아니었다. 이를 ‘업무 지향적(task oriented)’ 노동 패턴이라고 한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 이후로 시간당 생산성이나 마감 시간처럼 시계 시간으로 특징지어지는 ‘시간 지향적(time oriented)’ 노동 패턴으로 변화했다. 이것이 산업사회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시간 지향적인 노동 패턴은 점차 퇴색된다. 시간당 얼마라는 셈법은 무의미하다. 이는 노동과 비노동 간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했던 노동 패턴이 건수와 실적에 따라 조각난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건수 지향적(case oriented)’ 노동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62
문제는 도구적 가족주의 아래에서는 사회적 연대나 공동체성보다는 가족 단위 중심의 극심한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미 가족만이 개인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초 단위가 된 이상, 가족의 자원은 사회로 열린 가운데 순환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의 이익과 발전만을 위해 사용된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온다든가 사회 정의를 저해한다든가 하는 점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러한 가족 전략은 필연적으로 자원을 보다 많이 가진 계층과 그렇지 않은 소외 계층 사이의 격차를 확대하며, 사회의 연대와 공동체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101
맞벌이 여성은 일터와 가정에서 오는 이중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남편과 갈등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전략을 택한다. 직접 요리하는 대신 완제품을 구입하거나 가사도우미를 쓰는 식으로 갈등의 원인이 될 만한 가사와 돌봄의 일부를 상품화하거나 외주화한다. 또 어떠한 낭비도 없도록 가족 시간 전체를 압축적으로 관리하며, 가능하다면 자녀를 돌보는 일은 조부모에게 부탁한다.25 즉 노동시장과 가족 구조의 변동에도 변화 없이 완고하게 유지되는 젠더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투쟁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경제적 자원과 친족 네트워크를 활용해 개별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물론 이러한 전략에 투여되는 관리노동, 협상, 긴장 등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다. 115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의 노동시장 체제는 남성이 생계 부양을, 여성이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체제에서 점차 미국과 같은 가족유형, 즉 장시간 노동-맞벌이 부부-돌봄의 상품화가 특징인 라이프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시간제 노동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주변적인 노동 형태로 존재한다. 131
장시간 노동을 하는 대표적인 직종이 사무직 종사자들이다. 일에 정해진 끝이 없고, 특별히 바쁜 시기에는 야근, 특근이 일상화된 직종이다. 실제 과로사로 산재 신청을 하는 사례 다수가 사무직 노동자다.
이들 역시 자신의 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 받기 쉽지 않다.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보거나, 생산직 노동자처럼 장시간 계속해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실제 신체적, 정신적 회복이 어려운 현실, 심리적 정신적 부담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에 대한 판단 기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195
노동자는 자신의 안전과 건강이 위협받을 때나 인격이 무시당할 때, 권리를 침해당할 때조차 하던 일을 멈추겠다고 선언하기가 쉽지 않다. 사용자에게 노동시간은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과 자신이 가진 원료, 생산수단을 결합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를 이용해 기계를 가동할 수 있는 시간, 그 활동의 결과로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사용자는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온전히 통제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기를 원하고 중단 없이 노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인격이 위협받는다고 작업을 중단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226
그러나 생각해보라. 삶이 여유롭고 평화로워야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상상의 세계, 대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던가. 반면에 반복 회자되는 근면 신화 그리고 그에 토대한 장시간 노동 체제는 삶의 여유, 생각의 여유, 다른 시도를 할 여유 자체를 규범적으로 박탈해버린다. 실제로 ‘성실한 모범 근로자’에 표창까지 하면서 몰입과 헌신, 충성과 복종에 강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휴식·여유에 대한 혐오와 질시,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하는 근면 신화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삶의 예속 상태를 영속화한다. 254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더 이상 자본주의 타도나 혁명 같은 시도는 위험하기 때문에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단지 그 체제 안에서 지위(권리, 복지) 향상 정도만을 추구하는 가운데, 근면 성실의 가치를 인간다운 삶의 기본 전제인 양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257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 삶을 소진시키는 시간의 문제들
노동시간센터 기획 |
강수돌·김보성·김영선·김인아·김형렬·신경아·전주희·정재현·정하나·최민 지음 | 2015-11-30 발행
152*225mm | 299쪽 | 정가 15,000원
ISBN 979-11-952181-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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