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05서울은어떻게작동하는가-표지-입체

서울이라는 우리 삶의 운영 체제, 그 정치경제학
무엇이 이 도시를 만들었고, 이 도시는 우리 삶을 어디로 끌고 가는가

서울의 하루는 다른 곳의 하루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이다. 서울의 일 제곱킬로미터는 다른 곳의 일 제곱킬로미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어 그만큼 더 빠른 속도로 옮겨 다녀야 겨우 버텨낼 수 있는 공간이다. 압축 성장이 서울을 특별한 도시로 만들었다면, 그 특별함은 다시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생각과 행동, 실천을 가지게 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해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시가 작동하는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수많은 삶을 작동하는 운영 체제(OS)라 할 수 있다. 또 한국사회에서 서울이 가지는 위상에 비추어 서울이라는 운영 체제는 한국사회의 작동 원리라 할 수 있다. 즉 서울의 성취와 서울의 문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한국사회, 한국인의 삶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바로 이 운영 체제를 정치경제학으로써 포착한 책이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에서 정치경제학과 일상,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솜씨 있게 엮었던 충남대 경제학과 류동민 교수가 이를 담았다. 저자 자신을 포함한 삶의 내밀함을 담아냈다는 면에서 인류학이자, 거시적인 체계를 묘파했다는 면에서 정치경제학인 책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물신과 배제, 추격과 모방, 능력주의의 신화라는 틀로 서울을 이야기한다. 이 추상적인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들이 누구나의 소비, 주거, 여가, 노동, 종교, 대학, 사교육, 명품 같은 우리 삶의 부분들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인다. 케인즈, 마르크스, 피케티의 이론들과 역사적 사건들 역시 임대료, 자영업, 재개발 같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들추어내 볼 수 있는 주요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도구와 장치로 저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알아서 살아남기’가 생존의 법칙이 된 사회, 능력주의라는 신화가 무너진 시대가 지금 여기 서울이자 한국사회라는 점이다.

거시적 위험 속에서 미시적 안전을 추구하는 사회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보험과도 같은 생존의 법칙

전작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에서 저자는 한국경제를 유흥주점에 비유한 바 있다. 이익은 위로 몰리고 위험은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를 가리킨다. 시쳇말로 ‘빨대 꽂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거시적 위험과 불안 속에서 개인은 알아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CCTV와 블랙박스, 심지어 혈관인식까지 하는 출입시스템 등은 안전에 대한 강박을 상징한다. 아파트의 출입 제한시스템, 미국의 ‘가난한 문(poor door)’ 논란, 사교육, 고시에서 공시로의 변화까지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사적인 안전을 추구하는 장치는 수도 없이 많다. 각자 재주껏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방식, 저자는 이를 사보험에 비유한다.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쇠퇴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로 사회가 재편된 1980년대 이후, 사회경제의 조직 원리가 보험의 원리에서 복권의 원리로 변화했다는 식의 분석이 많이 있다. 저자는 복지국가를 통한 보험의 원리를 경험해본 적이 별로 없는 한국의 능력주의는 오히려 역의 경로, 그러니까 복권에서 보험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보험이란 사회 전체의 안전이 아니라 개인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 결국 본인 스스로 준비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점,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없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도 없다는 점에서, 비유하자면 사보험에 가깝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라는 신화가 무너진 사회,
겨우 버티는 삶의 시대가 왔다

1년 소득이 천만 원을 넘기기도 어려운 개인소득자,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지만 통근비용으로 그 돈을 고스란히 지불하는 30대, 고시원을 주거공간 삼아 살아가는 저소득층, ‘자기만의 방’이 없어 자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젊은 세대까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한가지로 내리막 앞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혹은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한국사회 시스템을 지탱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자리해왔다. 능력주의다. 그러나 저자는 조심스럽게 능력주의는 끝났다고 말한다.

“교육을 통해 질 좋은 노동력 상품을 만들거나 인적자본 투자를 많이 하더라도, 그 수익을 통해 돈을 모아 이너 시티를 벗어나 ‘진짜 서울’로 들어갈 전망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면? 근대자본주의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이자 현실의 축인 능력주의는 깨지고 만다. 사실 능력주의가 깨진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고 환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본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일 수 있다. 즉 자본의 진정한 한계는 노동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미래학적 호기심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경제의 정당성,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들 수 있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붕괴 가능성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특별한 도시를 살아내는 당신에게 정치경제학이 알려주는 것들

-케인즈의 ‘금리생활자의 안락사’와 임대료, 젠트리피케이션
케인스는 자본축적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금리생활자(rentier)는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라는 이른바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라는 명제를 주장한 바 있다. 자본이 많아지면 덜 희소해질 테고 그 대가로 지불하는 금리도 서서히 하락해서 궁극적으로 0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렌트는 모든 가격 설정에서 불변의 상수 역할을 해왔다. 값비싼 임대료를 낼 여력이 없어 홍대에서, 가로수길에서 밀려난 자영업자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거에서도 값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은 통근비용이 낮춰진 임대료를 상쇄하고 만다.

-피케티비율과 불평등의 도시, 서울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도를 측정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로 사용하는 부/소득 비율을 한국에 적용하면 대략 7로 추정된다. 연봉 오천만 원을 받는 회사원이라면 그 일곱 배인 삼억 오천만 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평균이 되는 셈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불평등 정도는 추격 불가능할 만큼 벌어져 있다고 말한다.

“1970년대 말 대기업 신입사원의 월급은 십만 원가량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삼십 평대의 분양가는 이천만 원 정도였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비율은 강남 아파트를 기준으로 할 때 대략 15에서 16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서울의 아파트 3.3제곱미터, 즉 한 평당 평균 가격은 1933만 3천 원이다. 대략 평당 이천만 원으로 잡으면 삼십 평짜리 아파트 가격은 평균적으로 육억 원 정도 하는 셈이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을 삼천만 원으로 잡으면 약 이십 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이것은 서울시 전체 평균이므로 강남 지역에 있는 아파트라면 비율이 그보다 훨씬 높아서 20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시초축적과 강남 개발
‘시초축적’이라는 용어는 자본주의 탄생 과정에서 부지런하게 노력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신화적 설명 방식을 가리킨다. 현실이 과연 그럴까. 저자는 남의 재산을 직접적으로 탈취하는 것은 소유권이 확립된 시장경제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도시 전체가 집단적으로 누려야 할 이익이 특정인들에게 귀속된다면, 결국 그것은 착취가 된다고 말한다. “내가 그때 말죽거리에 미나리 밭 몇 백 평만 사놓았어도……”라는 식의 상투적인 푸념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시초축적이 일어난 메커니즘을 세속적으로 포착해 드러내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인클로저 운동과 재개발
산업혁명 전야의 영국에서는 모직물이 비즈니스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지주들은 농사를 짓기보다는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워 모직물의 원료인 양모를 생산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마침내 실질적으로는 점유하고 있었으나 법률적으로는 소유권이 없었던 땅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그곳은 양 떼로 채워진다. 16세기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다. 저자는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 참사가 이 논리를 쏙 빼닮았다고 말한다. 지주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은 법대로 집행하려던 국가권력, 재개발로 금전적 이익을 얻으리라고 예상되었던 지주들, 세련된 도시 미관을 만들고 싶었던 정치권력 등이다. 세입자들은 법적으로는 보장되지 않으나 시장원리로 결정되어왔던 ‘권리금’, 장사하며 지내던 공간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일종의 ‘도시권’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저 인클로저 운동 시대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229~230쪽)

-마르크스의 ‘상대적 과잉인구론’과 불안정 노동
마르크스는 자본축적이 진전됨에 따라 노동력보다는 기계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생산기술이 발전하고 그 결과 노동력은 항상적으로 남아도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상대적 과잉인구론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가 되는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중 유동적 과잉인구는 경기 변동에 따라 경기가 좋을 때는 고용되었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해고되면서 고용과 실업 상태를 되풀이하는 노동자층을 가리킨다. 정체적 과잉인구는 대체로 산업화의 주변부에서 가내공업 등에 존재하는 형태로 자본주의와 전자본주의의 경계에 있는 노동자층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른바 프레카리아트, 즉 불안정 노동자층이 증가하면서 유동적 과잉인구와 정체적 과잉인구를 구분하기는 모호해진다. 기업들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함으로써 유동적 과잉인구의 상당 부분을 자영업자 혹은 외주 용역업체 인력으로 털어냈다.

저자소개 

류동민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살아왔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충남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친다. 여러 매체에 오랫동안 경제학과 우리 삶에 관한 글을 썼다.《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일하 기 전엔 몰랐던 것들》 《기억의 몽타주》 등의 책을 냈다.

 

차례

책머리에
프롤로그-기억 속으로, 공간 속으로

1부 배제와 물신의 공간
1. 소비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스타벅스의 ‘자유’
호모 이코노미쿠스, 코엑스몰에 가다
당신의 여가는 얼마짜리인가
2.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일터가 삶터를 잡아먹다
아파트 공화국
고시원에서 ‘살다’
3. 자기경영의 논리
사교육의 셈법
매력자본과 상징자본의 결합: 성형외과의 경제지리학

2부 남겨진 공간, 사라지는 공간
1. 하드웨어와 상징자본 축적
<혜화동> 혹은 휴먼 스케일
대형화의 법칙 그리고 부수적 피해
대학 캠퍼스의 정치경제학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2. 렌트경제
렌트생활자의 안락사?
가격에도, 임금에도 지대부터 깔고
렌트경제의 패배자들
학벌도 렌트다
3. 비동시성의 동시성
남겨진 것들의 세계사
누구의 잘못도 아닌 공간

3부 등고선의 은유
1. 따라올 테면 따라와보라!
공공성은 아파트 앞에서 멈춘다
서울은 얼마나 불평등한 도시인가: 한국경제의 피케티비율
대리운전과 택시의 주행 전략
2.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 선을 넘지 마시오
비생산적 노동들
3. 한국의 경제모델: 도강비, 유흥주점, 양아치
따라잡기와 따라 하기
누가 당신 등에 빨대를 꽂았는가

4부 높이 날고픈 욕망
1. 약탈에 의한 축적
태초에 부지런한 이가 있어…
실패한 인클로저
욕망과 실천의 우연한 결합, 그 허무한 결과
2. 재주껏 알아서 살아남으라
자본의 한계: 국가의 이름으로 심은 대로 거두리라
고시생의 시대에서 공시족의 시대로
누가 내일을 말할 수 있는가
3. 두 개의 사회
이너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남아도는 사람들의 갈 곳은
능력주의라는 신화 이후

에필로그


본문 발췌

서울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취와 모순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이다. ‘압축 성장’ 혹은 ‘후후발 산업화’라 불리는 한 세대 남짓 짧은 기간에 벌어진 극적인 변화, 그 상징적 장소인 서울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지켜야 할 것이건 버려야 할 것이건,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여기’를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우리의 욕망과 의도, 행동과 투쟁이 맞부딪히며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28

여가가 그저 노동시간의 나머지로 주어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가의 ‘품질’ 또한 여가를 즐기는 비용,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가 시간 중에 소비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여가의 품질이 여가의 가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여가의 가격이 여가의 품질을 규정하는 일종의 전도(뒤집힘)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가의 품질 차이는 여가가 사용되는 공간의 차이로도 나타나게 된다. 나아가 품질이 서로 다른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여가의 공간도 분리되기에 이른다. -49

정보비대칭이 심한 상황에서는 정보를 많이 가진 쪽에서도 상대방에게 자신이 정보를 많이 가졌음을 드러내 보이기가 어렵다. 내가 얼마나 좋은 인풋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인지 나는 알 수 있으나 학부모나 학생들은 잘 모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방법으로라도 내가 좋은 선생님, 즉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선생님임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등급이 오르지 않으면 수강료를 환불해드립니다’ 같은 마케팅 전략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 유치하지만 현실적으로 효력을 갖는 전략은 선생님의 출신 대학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SKY’, ‘서울’, ‘연세’ 같은 단어를 변형하고 조합한 학원 이름들이 그토록 많이 생겨났던 것이리라. -85

좁은 공간에 점점 더 많은 신도를 수용해야 ‘비즈니스’로서 생존이 가능한 교회는 고층에 지하예배당까지 갖춘 대형 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의 밤하늘에 빽빽하게 들어찬 붉은빛 십자가가 수많은 교회들의 독점적 경쟁 상황을 나타내주는 상징이라면, 점점 더 위압적인 숭고미를 갖춘 화려한 외관의 대형 교회는 그 경쟁에서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요소인 동시에 경쟁을 이겨냈음을 자축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125

교회에다 수익성의 논리를 들이대는 불경을 저지르기로 한다면, 교회의 자본생산성 역시 계산할 수 있다. 교회가 제공하는 것을 종교적 위안 서비스라 간주하면, 그 대가로 벌어들이는 부가가치는 기본적으로는 신도들의 헌금 총액으로 결정된다. 교회 면적이 똑같다면 신도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신도 일인당 헌금 액수가 많을수록 그 교회의 자본생산성은 높아질 것이다. 어느 대형 교회에서 정관에 십일조 헌금 의무를 명시하도록 개정하려던 해프닝은 경제적 논리로만 보자면, 떨어진 자본생산성을 가격을 인상해 만회하려는 기업의 시도와 다를 바가 없다. -125~126

한국사회에서 렌트의 원리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영역은 학벌일 것이다. 열아홉 살 무렵의 어느 시점에 치른 시험의 결과로 인생의 출발 시점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헤쳐 나가야 할 삶의 난이도가 결정된다는 것,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벌은 바꿀 수 없다’는 말처럼 이른바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정의상 ‘좋은 학벌’은 항상 전체 게임 참가자의 일부만 가질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마치 압구정동의 땅이나 아파트가 갖는 것과 같은 렌트로서의 성격이 학벌에도 생겨난다. -148~149

‘궁전예식장’이 백설공주의 성을 키치스럽게 모방했다면 ‘더 라움’은 대중적인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전략을 취한다. 들어갈 수 있음과 없음의 차이,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보라’와 ‘어떻게든 따라가겠다’의 차이인 것 이다. 안과 밖의 은유는 이렇듯 그 ‘안’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위계로 서 성립한다. 안과 밖의 은유, 그 위계의 은유가 작동하는 공간의 한편 에서는 배제의 논리가, 그 반대편에서는 모방과 추격의 논리가 작용한 다. 그리고 두 논리에 공통된 것은, 물신의 논리다. -174~175

소비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는 가격과 실제로 지불하는 가격의 차이를 ‘소비자 잉여’라고 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소비자 잉여가 클수록 사회의 후생 수준도 커진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취객이 얻는 소비자잉여가 대리운전 기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기초로 하는 것이라면, 과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듯 경제학은 매 순간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관해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그 어떤 가치로부터도 자유로운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88

백화점 명품관 뒷골목의 폰샵은 베블렌(Thorstein Veblen)이 말하는 ‘금전적 경쟁(pecuniary emulation)’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다. 금전적 경쟁은 베블렌의 저작 《유한계급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둥을 이루는 개념이다. ‘emulation’이라는 영어 단어는 흔히 ‘경쟁’으로 번역되지만 ‘흉내 내기’라는 뜻도 담겨 있다. 모든 경쟁은 남보다 앞서서 이기겠다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욕망으로부터도 기인하지만, 남을 따라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욕망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206

대중에게 ‘빵과 서커스’만 주면 된다는 권력자들의 고전적 지혜는 여기에도 작동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광범한 보급은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서커스 기능도 틀림없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네그리나 마이클 하트 같은 자율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다중(multitude)의 혁명적 역할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지만, 바로 그 다중이 언제든지 국수주의나 마초적 동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은 분명한 현실이다. 민족주의는 이차적 이데올로기라 규정되기도 한다. 그 자체로는 특정한 지향을 갖는 이념이 될 수 없으며, 다른 이데올로기의 부수물로서만 작용한다는 뜻이다. 어려운 경제적 현실 때문에 생기는 불만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격적 차별로 나타나는 것이 좋은 예다. 그런데 ‘민족’의 의미를 넓게 해석한다면 지연이나 학연 등의 네트워크에 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268~269

불확실성이란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위험도 비슷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위험은 장래에 일어날 여러 사건들의 확률, 정확하게 말하면 확률분포를 아는 상황을 가리킨다. 불확실성이 위험으로 대체되면 특정 개인이 무슨 일을 겪을지는 알 수 없어도 통계적으로 집단 전체에 발생하는 일을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불확실성을 위험으로 바꿈으로써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것은 주류경제학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과연 개인적·사회적 위험은 최소화되거나 미리 제거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관리의 원칙은 미시적 안전과 거시적 위험의 기묘한 공존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거시적 위험과 불안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나 알아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알아서 살아남기’, 그러므로 이것은 지금 여기 서울의 공간에서 적용되는 중요한 생존 원칙이다. -277~278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2014-12-15 발행
140*200mm | 285쪽 |정가 14,000원
ISBN 979-11-952181-2-7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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