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2 사토 도시키

후루이치 노리토시 X 사토 도시키

‘사회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건 무엇입니까’

 

*이 글은 코난북스에서 출간 예정인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본문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사토 도시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회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매우 성실한 사람이다. 수상쩍게 여겨지기 쉬운 사회학을 전달하기 위해서 전문가인 사회학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해왔다. 그 성과의 일부가 《사회학의 방법》에 정리되었다. 이 책의 뒤에 등장하는 니헤이 노리히로에 따르면, ‘다 읽고 나면 고급 증류주를 마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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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왜 사회학이나 사회학자가 세상에 통용되었을까요?

사토 설득력 있는 말의 종류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 중에서 지금까지 압도적으로 강한 학문은 경제학이었고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도 불렸죠. 경제학이 왜 강했을까요? 물리학 모델을 그대로 시장에 적용해서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회를 자연 현상과 똑같이 관찰하고 예언할 수 있어요. 경제학의 강점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면, 자연과학처럼 사회의 동향을 모델화해서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자연과학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사회를 설명하는 사회학의 말이 존재감을 강하게 나타내기 시작한 것 아닐까 합니다.

후루이치 사회학에 적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토 일단은 호기심이 있어야겠죠. 호기심이 없이는 다른 가능성이 나 다른 전제를 생각할 상상력이 작용하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사 안의 감촉에 감각을 지닌 사람이 어울립니다.

후루이치 감촉이요?

사토 감촉은 아주 중요합니다. 딱 보기만 해도 다 안다고 자인하는 사람이나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학자로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만지는 감각을 지니는 사람이 오래 가죠.

후루이치 이유가 뭘까요?

사토 만지는 감각이 있는 사람은 유연하게 사안을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만진다’는 행위는, 전부를 모르더라도 어느 부분을 포 착할 수 있습니다. 만지는 사물이나 일이 무엇인가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색다르게 생각해보는 상상력도 쉽게 움직이죠. 반대로 머리 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가능성마저도 추상적인 형태로만 생각 합니다. 그래서 발상이나 사고가 쉽게 경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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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사회학자는 치료사나 컨설턴트에 가까울까요?

사토 치료사와는 다릅니다. 뛰어난 치료사는 일정 부분 이외에는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와 반대로 사회학자는 상대와 공명하면서 완만하게 대답을 만들어가니까 치료사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입니다. 굳이 따지면 컨설턴트에 가깝겠죠. 다만 일반적인 컨설턴트는 “이렇게 하면 적자를 2년 안에 해소할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예언자가 될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사회학자와 다릅니다.

나는 《사회학의 방법》이라는 책 마지막에 사회학을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 딱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목을 스스로 조르는 사람에게 “조르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때입니다. 자기 목을 스스로 조르는 사람에게 다른 시점을 제공하거나 그 사람이 품은 생각을 좀 더 명료한 말로 표현함으로써, 문제의 진면목을 쉽게 생각하도록 도울 수 있어요. 그게 사회학자의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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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앞으로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거대 이론이 만들어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학은 어떻게 진보할까요?

사토 ‘이런 장면이나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정적인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사회를 봐도, 일본의 뒤를 한국이 따라오고 한국의 뒤를 중국이 따라오는 식으로 시차를 동반해서 상당히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비슷한 전개라 하더라도 일본과 한국은 절대로 똑같은 사회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을 몇 가지 관찰할 수 있으면 한정적인 지식을 더 조합해서 장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라는 상황에서는 전제 조건의 차이에 따른 인과를 특정하기 쉽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전부터 내려온 과제도 있는데요. 사회학에는 제도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합니다. 내 첫 저서인 《근대·조직·자본주의》는 법인을 다룬 비교사회학인데, 사회학자가 법률을 말하려고 하면 참 무서워요. 법학이나 경제학이 근대적인 빌딩이라면 사회학은 ‘빌딩 사이의 라면 가게’ 같다는 의식이 있어서 빌딩 안으로 는 좀체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빌딩 주변의 풀밭은 이러이러하다’ 같은 이야기만 쓰게 되죠. 그러나 사회는 모두 얽혀 있으니까 사회학 연구에는 법제도나 경영 조직에 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학자는 그런 것을 잘 못하겠다는 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법학이나 경제학 연구자 중에 사회학적인 사고법을 능숙하게 체득하고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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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월 1일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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