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다 한숨 고를 여유가 생겨 서점에 다녀왔습니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정리가 필요할 때 가끔 서점에 갑니다. 눈길이 어디에 머무르는지 발견하면서 영감을 채우곤 하는 것입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시선을 자주 붙잡는 곳이 있습니다. ‘취미’ 분야 매대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컬러링 북, 색칠하는 책입니다. 한 권의 책을 시작으로 최근 이런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더불어 한쪽에는 뜨개, 자수, 요리, 인테리어 책들이 즐비합니다. 창작 활동을 안내하는 취미 서적들은 여행 서적만큼 꾸준히 팔리는 콘텐츠인가 봅니다.
‘몸을 움직이고 싶다.’ ‘손을 쓰고 싶다.’ ‘내 것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책상 앞에 묶인 채 일에 치이고, 야근에까지 시달려 몸이 삐그덕거린다 느낄 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활동으로 이런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은 왜일까요. 그저 잘 기획된 상품들이 우리 눈과 손과 지갑을 홀리기 때문일까요. 꼭 그래서라기보다는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요즘같이 ‘생존’이 사회문제이자 모두의 고민인 시기에 ‘만들기’는 그저 한가한 소리로 들리거나 호사스러운 취미로 느껴지는 주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만들기의 세계’를 탐색하면서, 우리는 만들기가 삶의 중심을 발견하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생존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들 줄 안다는 것은 자기 삶의 일부나마 장악할 줄 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의 생이 주어진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옳다고 여기는 가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고민한 만큼 자유롭게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습니다. 사회 구조는 너무나 견고하고,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듯한 개인의 존재는 작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듦으로써 ‘자급’ 능력을 회복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건의 생산과 소비를 큰 축으로 작동하는 현대사회에서 직접 만드는 행위는 오래전 생활방식에 깃들어 있던 ‘자립’이라는 가치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Do It Yourself. 너무나 익숙한 말이지만 인터넷에서 조립 가구를 주문할 때나 접하게 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철학, 즉 스스로 해결하라는 태도는 곱씹을수록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건드립니다.
매일 먹는 밥과 매일 입는 옷을 자급자족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밥을 지으려면 쌀이 있어야 하는데, 쌀을 마트에서 사지 않는다면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옷을 사지 않고 손수 지으려면, 재봉이나 바느질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천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그저 밥을 먹고 옷을 입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고 베틀로 직조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다행히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은 소비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직접 만드는 행위 자체를 멀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 만들며 살기에는 얼마나 어려운 환경 안에 살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가까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만약 직접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그러한 경험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놓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직접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 것 같은 일이 아닐지라도, 작은 물건을 직접 만들 줄 알게 되고 간단한 공구를 직접 다룰 줄 알게 되고 수시로 일어나는 고장이나 불편을 스스로 해결할 줄 알게 되면 그 기쁨과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점에 갔던 그날, 식물에 관한 책을 한 권 골랐습니다. 식물을 돌보는 것은 30년이 넘도록 ‘나는 결코 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용감하게도 생각을 바꿨습니다. 계기는 대단치 않습니다. 죽이기엔 아까운 화분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이 식물만큼은 살려보리라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화초를 기른다는 것은 어떤 종인지 알고 물 주는 법을 듣고 적당히 신경 쓰는 정도에 그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기르기 쉽다는 작은 선인장 하나도 건강하게 돌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들은 매뉴얼에 의지하는 대신 잎이 바래거나 떨어지는 건 어떤 증상인지, 지금 이 식물에게 필요한 건 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진 것이 제게 일어난 커다란 변화입니다.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은 직접 할 줄 아는 일이 늘어난 것만이 아닙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고정관념에 수동적으로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스스로 재구성하려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는 빨간 약을 먹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노동과 소비라는 굴레에 갇혀 안락함을 느꼈던 대신, 안락함의 이면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변화 때문에 고민도 걱정도 많아집니다. 적어도 유행이 지난 물건을 버리고 새것을 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려고 애쓰게 되거나, 작은 소비 습관 하나 고치지 못하는 자신을 마음속으로 채찍질하게 됩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지나온 많은 밤 우리를 괴롭혔던 고민 역시, 해갈되지 않은 채 여전히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선택, 느리고 느슨하더라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선택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만듦으로부터 얻는 기쁨, 그 안에 우리 삶의 본질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 기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의 여정은 우리 손의 감각 그리고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자급의 일상이 사라져간 배경과 그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또 최근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만들기’라는 행위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동안 릴리쿰이 시도해온 다양한 실험으로 배양된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이 책에서 혹시 대단한 노력 끝에 얻은 성공적인 결과나 성찰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단언컨대, 저희는 매번 실패했습니다. 그중에는 실패해도 좋았던 시도들도 있었고 의도하지 않은 실패도 있었습니다. 실패의 순간들을 감당하면서, 즐거운 시간도 많았고 괴로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순간들을 거치며 얻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만들기 문화에서 경계해야 할 점들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 역시 그 실험들만큼이나 순탄치 않았습니다. 처음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세웠던 계획보다 글쓰기 호흡이 길어졌고,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무게감이 오히려 생각을 가두는 것 같아 고심도 많이 했습니다. 설익은 이야기를 쏟아내기보다 곰곰 생각하고 쓰고, 여물지 않은 고민들은 멈추었다가 생각의 매듭이 지어졌을 때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손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온 탐험의 결과물이자, 실패하더라도 그 생각을 우리 손으로 실험해보고자 했던 지난 3년간의 모험의 기록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