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살았던 1994년을 매우 낭만적인 과거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혹은 성수대교 붕괴, 김일성 주석 사망, 미국 월드컵, 서태지 열풍 같은 특정한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을 기억하건 그해를 겪었던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가지가 있다. 1994년 여름은 몹시 더웠다. 어느 소설의 한 대목이다.
“그해는 전국적으로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지. 기억하려나 모르겠어. 1994년, 대구에선 40도에 육박하는 더위 때문에 노인들이 막 죽어 나가곤 했어. 그때만 해도 함석지붕 집에 사는 독거노인들이 많았거든. 애기들도 죽고, 노인들도 죽고. 아무튼 내 말은 무지하게 더웠단 말이야. 그해는.”
그는 갑자기 더워진 듯 손으로 셔츠 옷깃을 들썩이며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더운 나머지 집에 가서 샤워를 했지. 그런데 샤워를 해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거야. 그래서 한 번 더 했지. 그래도 더웠어. 얼음물을 마시고, 수박을 통째로 먹었는데도 계속 더운 거야. 이상했지. 결국 시원해질 때까지 샤워를 했는데, 열 번 넘게 샤워를 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지. 그러고 나서 깨달았지. 내 몸 안에 어떤 뜨거운 열기 같은 게 들어왔다고 말이야. 말하자면 에너지 같은 거지. 온 우주를 관장하는 에너지. 어쨌든, 그날부터 기이한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매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됐어.”
최민석, 《능력자》, 민음사, 2012, 42~43쪽
질병관리본부에서 펴낸 ‘한국의 기후변화 건강 영향과 적응 대책’이라는 보고서는 1994년 여름의 폭염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이상고온 현상 발생이 더 잦아졌다고 한다.
1971년부터 2007년 사이에 서울에서 최고기온이 30도, 32도, 34도 이상을 기록한 빈도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특히 1994년과 1997년에는 고온 현상이 자주 발생해 일 최고기온이 30도가 넘는 빈도가 각각 56, 61회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1994년 여름은 단연 압권이었다. 일 평균기온이 28. 1도였다. 이전 해(24. 3도)나 이듬해(25. 3도)와는 다르게 확연히 더웠다. 93년과 95년에는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을 기록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하지만 94년 여름에는 35도 이상을 기록한 날이 15일이나 되었다. 최고기온이 38.4도를 기록해 51년 만에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되기도 했다.
날이 유례없이 더웠던 만큼이나 피해도 컸다. 폭염이 두려운 까닭은 기상재해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994년 7월과 8월 사이에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5742명이었다. 이는 같은 기간 교통사고로 사망한 802명보다도 7배 이상 많은 수치다.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 조사 결과 1901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기상재해로 중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일으킨 것이 1994년 여름의 폭염이었다. 거대한 태풍이나 무시무시한 홍수가 아니라 바로 폭염이었다. 그다음이 1104명이 사망한 1936년 3693호 태풍, 844명이 사망한 2006년 홍수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528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