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북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책의 의도가 담긴 프롤로그, 편집자가 가장 좋아하는 ‘약탈에 의한 축적’ 글을 buk.io에 오픈해두었습니다.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라는 용어는 원래 자본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부지런하게 노력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신화적 설명 방식을 가리킨다. 마치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개미가 겨울에 따뜻하고 배불리 지낼 수 있는 까닭은 봄, 여름, 가을에 열심히 일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하자면 “태초에 부지런한 이가 있어……” 오늘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개미와 베짱이’는 근대사회를 지탱하는 대원칙이자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meritocracy)를 교육하기 위한 매뉴얼이다.
그런데 이 우화의 본령은 오히려 베짱이가 겨울을 참혹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옛날 노래만 부르며 놀았던 스스로의 게으름 때문이었음을 설파하는 데 있다. 사실 능력주의가 정치·사회적으로 활용되려면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명제보다 오히려 ‘성공하지 못했다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라는 대우 명제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는 순간 시초축적의 신화는 무너진다. 서울처럼 급격하게 팽창하며 발전한 도시의 공간을 기획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이익을 빼앗아 부를 쌓는다. 직접적으로 남의 재산을 탈취하는 것은 소유권이 확립된 시장경제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도시 전체가 집단적으로 누려야 할 이익이 특정인들에게 귀속된다면, 사회적 생산력의 성과를 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누린다는 점에서 결국 그것은 착취가 된다. 그러므로 “태초에 부지런한 이가 있어……”라는 신화는 필연적으로 “태초에 누군가의 것을 빼앗은 이가 있어……”라는 현실과 맞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