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4 니헤이 노리히로

후루이치 노리토시 X 니헤이 노리히로 ‘사회학의 규범은 무엇입니까’

*이 글은 코난북스에서 출간 예정인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본문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볼런티어의 탄생과 종언》은 2011년 2월 28일에 출판되었다.

그렇다, 그로부터 열흘 남짓 후에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볼런티어의 ‘종언’을 따질 상황이 아닌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에 니헤이 선생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지금까지 써온 논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사태에 무력함을 느끼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실제로 니헤이 선생은 동일본대지진 직후부터 기존 지식을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정보를 발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피해지에 가서 ‘연구자’로서 3.11을 기록하고 분석해왔다. 또 당시 소속이던 호세이 대학 다마 볼런티어센터장으로서 학생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처럼 니헤이 선생은 연구와 실천을 양립하는 사회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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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의 말하기

 

니헤이 오구마 에이지 선생이 사회학자는 사회적으로 ‘평론가’와 거의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나는 사회학자는 어떤 의미에서 평론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 않나 싶어요. 예를 들어 ‘V-22 오 스프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시정(市 井)의 개인으로서는 당연히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요. 그러나 ‘사회학자’로서 사회학의 방법적 기준에 기반을 두고서라면, 말할 수 있 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지 않을까요. 그와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 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요.

후루이치 그건 사회과학 전체에 해당하지 않나요?

니헤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긴 하지만 경제학자나 법학자는 연구 대상이 한정적이어서 연구자로서 하는 발신인지, 일반 시민으로 서 하는 발언인지 구별이 명쾌하잖아요. 예를 들어 경제학자가 ‘모모이로클로버Z’ 같은 아이돌 그룹을 두고 어떤 발언을 한다면, 그 건 경제학자의 분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한 발언임을 명백하게 알 수 있어요. 이와는 다르게 사회학자가 다루는 대상의 범위는 무한정하다 보니까 사회학자가 뭔가를 언급하면, 학문적인 지식이나 기준에 바탕을 둔 것인지 아닌지 형식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회과학보다도 자신의 말이 의거하는 지식의 수준이 어디에 있는가 자각하고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이 뒤섞인다면 개인적인 혼잣말인데 거기에 괜한 권위가 부여되고, 어떨 때는 사회학 자체가 엉망진창인 학문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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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가 만드는 공동성

 

후루이치 사회학적인 규칙이나 절차에 따르느냐 하는 문제와는 완전히 별개로 ‘사회학’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때에 따라서 그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저는 ‘사회학자는 약자 편을 드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당신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짓만 하고 약자의 시점에 서지 않아’라는 비판을 자주 받습니다.

니헤이 아마 그 반대의 비판도 있을 겁니다. 사회학을 하는 사람이 과도하게 약자 편에 서서는 안 된다고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사회학과 가치의 관계에서는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에 게 냉수를 끼얹는다는 이미지, 반대로 편을 든다는 이미지라는 양 극단이 공존한다는 소리니까요. 아마 양쪽 이미지에 다 근거가 있을 겁니다.

사회학은 사회 내외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의 의미 세계를 횡단하며 관찰해가니까, 이른바 상식과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쉬워요. 사회학자 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선생이 밝혔듯이 애초에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라는 개념 자체에 평등으로의 참여라 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후루이치 씨가 받는 비판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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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연구하기

 

후루이치 니헤이 선생은 《볼런티어의 탄생과 종언》만 봐도 균형이 아주 잘 잡힌 것 같아요. 하나의 입장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글을 쓰시죠.

니헤이 한 가지 이상의 대상을 조사하다 보면 각각 다 합리성이 있거든요. 그걸 숙지한 상태에서 우에노 지즈코 선생처럼 한쪽 입장 에 참여하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내 연구는 볼런티어에 참여하는 것보다 볼런티어를 둘러싼 과도한 정념 자체를 분석하고 싶은 의도 가 있어서 복수의 합리성을 그대로 기술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균형이 잡힌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군요.

후루이치 그런데 참여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다양한 볼런티어 활동을 하면서 연구를 계속하셨잖아요? 그런 동기는 어디에서 왔나요?

니헤이 으음, 나는 원래 운동이나 사회 변혁에 거부감을 느꼈어요. 대학생 때는 디스코텍(웃음)을 빌려서 이벤트를 여는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시골내기의 도쿄 과잉 적응기 같은 나날 이었어요.

후루이치 니헤이 선생에게도 그런 시절이!

니헤이 그런 내게 청춘을 투자해 볼런티어를 하는 사람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보고 있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지경이 었으니까요. 게다가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95년은 볼런티어 원년이라고도 불려서, 사회적으로도 기대를 받았죠. 그래도 그런 기류 에 편승하는 것에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대체 볼런티어란 무엇일까, 이것을 파고들면 현대 사회를 포착하는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 까? 그래서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나 자신의 떨떠름함을 해소하면서 사회를 기술하겠다는 샤먼적인 욕망에서 시작한 연 구입니다.

후루이치사회학표지

이 책은 5월 18일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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