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서문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새 책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가 코난북스에서 곧 출간됩니다. 일본 사회학의 걸출한 12인을 만나 ‘사회학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묻고 답한 책입니다.

(그래서 원제가 <후루이치 군, 사회학을 다시 배우세요>입니다.)

왜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를 담은 저자의 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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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사회학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이나 ‘사회학’을 전공한다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다. 분명 대부분 당황하거나 어물거릴 테니까. 그만큼 사회학자가 사회학을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는 간단하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되묻자. “경제학이나 역사학은 사회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사회조사는 사회학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인간이 영위하면서 만들어내는 사회를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수많은 학문은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 경제학이나 인류학 같은 인문계 학문은 물론이고 이공계 학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인공지능, 로봇 연구자들도 자신들의 연구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또 다른 이는 사회학을 ‘상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되묻자.

“그런 거라면 트위터에서 누구나 하는 거잖아요?”

분명 사회학 교과서 중에는 ‘상식을 의심하는 학문’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상식을 의심하는 행위에 사회학이 정말로 필요할까? 예를 들어 ‘옛날 일본인은 예의가 발랐다’는 ‘상식’을 지닌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에게는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오쿠라 유키히로(大倉幸宏)의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지만》이라는 책을 소개해주자. 이 책에 따르면 2차대전 이전의 일본에는 전차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 화장하는 여성이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 안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반라 차림인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오쿠라의 책은 ‘사회학’이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았고 저자 역시 스스로 ‘사회학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래도 상식을 의심하는 일이란 사회학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나 보다. 실제로 SNS에서 많은 사람에게 퍼지는 발언 중에는 ‘상식을 의심하는’ 발견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그렇다. ‘사회학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만큼이나 ‘사회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서점에 가면 사회학이라고 선언하는 책이 무수히 많고, 사회학 교과서나 사전 같은 것도 잔뜩 존재한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사회학자 오사와 마사치는 《현대 사회학 사전》이라는 2만 엔이 넘는 사전에서 사회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학을 정의하는 근본 문제는 ‘사회 질서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사회 질서가 성립하는 상태란 타자에 대한 주체의 기대가 상호 간에 고도의 개연성으로 채워진 상태, 즉 상호 간 타자에 대한 기대에 상보성이 있는 상태이다.

자, 이 설명만으로 ‘오호라! 그게 사회학이구나!’ 하고 바로 이해한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얼른 오사와의 《신체의 비교사회학》이라도 읽으시기를(앗, 혹시 벌써 읽으셨나요.)

오사와의 스승에 해당하는 사회학자 미타 무네스케(見田宗介)는 《사회학 입문》에서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사회학을 설명했다. 미타 무네스케에 따르면 사회학은 ‘현대의 지(知)로 파악된 인간의 학(學), 즉 관계로서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말인데……. 문장 자체는 단순한데 선뜻 알아들을 수 없는 정의다. 참고로 《사회학 입문》이라는 오사와 마사치의 책은 ‘입문’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지만 매우 추상적이어서 맨 마지막 장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늠름한 영혼의 선언자의 목소리와 아득히 호응하며 말해야 한다. 영혼은 우리 내부에 있는 영혼에. 줄리어스 시저는 우리 내부에 있는 줄리어스 시저에게. 이렇게.

사회학을 설명하려면 항상 고난이 따른다. 어떻게 해도 쉽게 반론이 예상되는 설명을 하게 되거나, 사회학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난해한 논의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 사회학에는 ‘잘 모르겠는 학문’, ‘신뢰할 수 없는 학문’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학은 정말 재미있는 학문이다. 게다가 사회학의 사고법을 배우고 나면 일이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사회학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이러한 매력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알면 좋겠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첫 번째 이유다.

이 책을 쓰게 된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직함과도 관계가 있다. 나는 대중매체에 나가게 될 때면 종종 스스로 ‘사회학자’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비판을 듣는다.

“박사학위도 따지 않은 애송이가 어째서 사회학자인 척을 하지?”

나는 (이제 슬슬 박사 논문을 쓰긴 써야 하는데) 아직 박사학위를 따지 않았다. 그러나 이공계와 달리 인문계 대학의 교원이 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원래 ‘학자’와 나이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자신만만하게 스스로 ‘사회학자’라고 부르는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사회학이 재미있는 것은 이제 알지만 아직 사회학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유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회학자’라는 직함도 그게 상대에게 잘 통하니까 쓸 뿐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제목(원제 ‘후루이치 군, 사회학을 다시 공부하세요’)처럼, 사회학을 다시 한 번 공부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다시 한 번 공부한’ 결과물인 이 책이 좋은 사회학 입문서가 되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 종잡을 수 없는 학문을 어떻게 ‘다시 공부’하면 좋을까? 그 힌트를 이 책에서 인터뷰한 사회학자 사토 도시키가 《근대·조직·자본주의》라는 책에 쓴 맺음말에서 찾았다. 대학원생 시절에 사토 도시키는 수업 전에 항상 지도교수와 논의를 주고받았고, 그때를 회고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다이얼로그로만 배울 수 있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에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러한 논의 속에서 사회학자가 되었다.

다이얼로그, 대화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필수 질문은 당연히 단 하나다.

“사회학은 무엇입니까?”

자, 총 12인의 사회학자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물론 대화는 그 질문만을 묻고 답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각 장에서 읽기를 바란다. 사회학의 매력을 다양한 각도로 다룬 책을 완성한 듯하다. 무엇보다 사회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이 책은 결과적으로 일본 ‘사회’를 부감하는 책이 되었다. 이 예리한 사회학자들은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사회학을 전부 다 알 수 있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하물며 이 책을 쓰려고 찾아가 만난 이들 말고도 뛰어난 사회학자는 많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주 많다). 그리고 시간 문제 등으로 대담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한 분도 있다.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은 사회학 입문서로는 가장 양질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이라는 단어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 ‘사회학자’로 활동하지만 아직 사회학이 뭔지 모르겠는 사람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그래서 나도 반복해서 읽을 것이다).

각 장은 대담을 위해 방문한 순서에 따라 배치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어디서부터 읽어도 괜찮다. 각 장 서두에는 내 방식대로 각 사회학자를 소개하는 글을 써두었다. 오사와 마사치가 《허구 시대의 끝》에서 말했듯, 사회학 같은 지식에서는 ‘학문’과 ‘인격’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사회학의 재미가 조금이라도 알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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