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동료, 일자리를 잃은,
고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구술기록 프로젝트
2017년 5월 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해양 플랜트 마틴링게 건조 현장. 작업을 하던 크레인과 크레인이 충돌, 추락했다. 사망자 6명. 부상자 25명. 다친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 중 환영, 환청,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이들이 있었다.
마창거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산추련)은 이 노동자들 중 11명이 트라우마를 산재로 인정받는 과정을 도왔다. 그리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를 지원하고자 만들어진 심리?상담활동가 네트워크 ‘심심통통’이 여기 참여했다.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고통을 삶에 새긴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인권기록 활동가들도 합류했다. 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일자리를 찾아 거제로 왔듯, 사고 후 다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기록자들은 거제뿐 아니라 대구, 울산, 인천, 충남 당진 등으로 찾아가 노동자들을 만났다.
자기 때문에 일자리를 옮겼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청년이 있다. 수년을 숙소를 함께 쓴 동료를 잃은 노동자, 형제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노동자도 있다. 구술을 위해 녹취한 주인공 아홉 명의 음성에는 눈물과 한숨, 머뭇거림과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이 자신에게는 평생 남을 상처를 다른 이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끝내 꺼낸 말들이 이 책에 담겼다.
“사고를 당해보니까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들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언젠가는 하긴 해야 할 거 같아요. (…) 사람이 살다 보면 사고도 나고 실수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좀 덜 나게, 큰 사고 날 것을 작은 사고로 줄일 수 있게 자꾸 뭐라도 누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관심을 갖고 해야 할 것 같아요.” _김종배, 150쪽
그 많은 배는 누가 만들었는가.
물량팀, 돌관 노동자들이 증언한 위험의 최전선, 조선소
“어떤 위험에 노출될 때 그곳을 벗어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데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제일의 안전 수칙은 따로 있다. 바로 ‘뛰면 죽는다’는 말이다. 조선소 온 천지에 위험이 상존하므로 뛰다가 도리어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_기획자의 말, 257쪽
매년 노동자 2천여 명이 노동 중에 발생한 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이 책의 기획자인 마창거제 산추련 이은주 상임활동가는 조선산업이 특히 ‘산재 직업병의 백화점’이라고 말한다. 구조물이 거대하고 복잡한 만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충돌, 낙하, 붕괴, 협착, 전도, 폭발, 소음, 무리한 동작, 유해광선, 감전, 분진, 산소 결핍 질식, 유기용제…”(258쪽) 위험한 요소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촉박한 시간이 있다. 가뜩이나 위험한 공간에서 안전은 공기(工期)에 후순위로 밀린다. 급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물량팀, 돌관이다. 물량팀은 작업 물량을 단기간에 처리하는 10~30명 단위의 작업팀이다. 돌관(突貫) 또한 ‘장비와 인원을 집중 투입해 휴식 없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공사, 또 이를 하는 노동자’를 가리킨다. 공기가 지연되면 지연손해금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261쪽), 그럴수록 단기 고용 노동자, 즉 물량팀, 돌관팀이 투입된다. 사고가 발생한 마틴링게 프로젝트 역시 발주사로 인도하기까지 한 달여가 남은 시점인 노동절에 노동자 1623명이 출근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페인트를 바르고 있는데 위에서 그라인딩 작업을 마치고 샌딩 가루를 불어대거나(70쪽), 시너로 클리닝 작업하는 옆에서 용접을 하는(238쪽) 등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혼재 작업이 일상화된 곳에서 일을 했다. ‘조선소의 특수한 상황’(37쪽)이라는 이름으로 소속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른 채 작업에 투입되었다. 위험하고 규정에 어긋나도 ‘관행이다’, ‘어쩔 수 없다’, ‘시간에 쫓기니까 언제까지 이 일 못 끝내면 손해가 된다’는 압력 아래서 ‘안 잘리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149쪽).
이 책의 주인공 중에는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일한 노동자뿐 아니라 자신이 사업자등록을 한 물량팀장으로 일하다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105쪽)도 있다. 혼재 노동의 위험뿐 아니라 하청 노동이 발생하는 구조, 임금 체계,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등 조선소 노동의 여러 국면이 세세하게 담겨, 이런 구조가 어떻게 노동의 위험을 가중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그리고 조선산업이 어떤 이들의 노동으로 지탱해왔는지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자기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까지
주인공 아홉 명의 구술로 이루어진 책에서 전체를 이해하기 쉽도록 ‘들어가는 글’에서는 사고 당시의 정황과 사고가 일어난 배경을 주인공들의 목격담을 포함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제시했다. 권말에는 ‘기획자의 말’로 마틴링게 프로젝트 사고 이후의 법적 조치와 책임을 묻는 과정, 노동?인권?사회단체에서 요구하는 바가 자세하게 정리했다. 또 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25년간 일해온 이은주 활동가가 조선업의 개괄과 비정규 고용, 하청 고용이 늘어난 배경,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글을 담아 주인공들의 생애와 한국 사회의 면면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고 나면 이들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삶, 일, 상처에 집중해도 좋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방 얻을 돈을 마련하려고, 숙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서울에서 옷 장사가 시들해져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다른 일보다 많은 돈을 준대서 조선소로 간 이들. 이들의 궤적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이들의 현재가 책에 담겼다. 즉 이 책은 사고의 기록인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면면을 담은 생애사라 할 수 있다.
내용 중에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아프다면서 일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거나(46쪽), 고통을 호소해도 그 고통을 입증하라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공무원들(102쪽)이 있다. 의사 소견서에 따라 휴업급여 등의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데도 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취업 가능’이라고 써서 급여가 끊기는 바람에 생계가 곤란해졌다는 고백(163쪽)도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를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은 자기들이 해야 되는 일을 방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안 된다는 가정 하에 설명을 해요. 근로자를 위해 있는 기관인데 보험회사처럼 자기 방어하기 바빠요.” _김명진(가명), 220쪽
“‘자꾸 이래 와갖고 약만 먹으면 우얄라 카노?’ 이래 말해요. 그거를 자기가 봐서 괜찮다 안 괜찮다,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해야 하는데 어떠냐고 물어보고 ‘몸은 괜찮으니까 괜찮다, 이제 그만해도 안 되나, 언제까지 올라 그러노’, 갈 때마다 그런 식이었어요. 내가 안 와도 되는데 나랏돈 받으려고 억지로 오는 사람 취급당하는 느낌이었죠.” _김종배, 136쪽
가장으로서, 중년 여성으로서 기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온 조선소에서 다시는 일하지 못 하겠구나 자각하고 찾아온 막막함, 전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막연함, 정신적 고통과 실직의 불안으로 불거진 가족과의 불화.
이 책의 목적은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만큼이나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데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러한 노동의 주인공일 것이고, 또 우리 중 누군가는 이런 이들을 어떤 관계에서건 만나는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에 감응하는 것이 변화를 시작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단 직원이 그런 얘기도 했어요. ‘니네 사고 나고 바로 나간 것도 아니고 그 뒤로 보름인가 일을 했던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있는 사람이 사고 후에 곧바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냐.’ 그 말 들었을 때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웃었어요. 저희 손으로 작업한 바닥에서 여섯 분이나 돌아가셨는데 그 배에 다시 올라가고 싶겠어요? 근데 그 위에 간 사람들이 다 가장이란 말이에요. 어떤 마음으로 거길 올라갔겠냐고요.” _김재영(가명),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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