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그 한 가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가성비로 소비를 결정하는 시대에, 장시간 노동으로 무엇 하나 끼어들 틈이 없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한 가지,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호하는 한 가지를 책에 담는 기획으로 출발했다. 이후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주제를 정하고 대상이 되는 소재의 폭을 넓혔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개성 넘치는 글을 써온 이들에게서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담기로 했다.
1차로 피트니스, 서재, 게스트하우스, 쇼핑, 망원동 등 5종을 먼저 함께 선보이고, 이후로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이다. 론칭 타이틀을 쓴 이들은 인권활동가, 목수, 약사, 일러스트레이터, 인문학자다. 중년 비혼 여성으로서 병을 얻고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자기 몸과 친밀해져가는 연대기, 망원동에서 나고 자라 인문학자가 되어 바라본 그 동네의 변천사 등은 이 시리즈가 지향하는 바와 개성을 잘 드러낸다.
한 손에 쏙 들어오게, 무겁지 않게, 140쪽 내외로 길지 않게 만들어진 책들은 부담 없이 그 세계를 동행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색깔 있는 출판사, 개성 있는 저자, 매력적인 주제
출판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1인 출판사들의 공동 프로젝트
특히 이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최초의 실험이자 유쾌한 공동 프로젝트로 눈길을 끈다. 세 출판사의 종사자를 다 합치면 4명. 한 곳 빼면 대표 1명이 운영하는 말 그대로 1인 출판사다. 두어 달에 한 권을 내기도 빠듯한 인력 구조다.
출간 후 일주일도 안 된 신간이 서점 매대에서 내려가고, 특히 순문학이나 정치사회 분야는 서점에서 그 매대마저 점점 좁아져가고 있는 것이 출판 환경이다. 또 기존의 서점 영업이나 매스미디어 광고보다 SNS 등을 활용한 홍보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에 1인 출판사가 적절하게, 빠르게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세 출판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에세이라는 장르에 한 브랜드로 진입하고, 마케팅과 홍보를 공유하고, 개성 있는 작은 서점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응한다는 전략으로 아무튼 시리즈를 준비해왔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제와 저자를 짝짓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내고, 저자의 초고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교집합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인 1차 론칭 다섯 종으로 지난 주말에 열린 와우북페스티벌에 참여해 독자들은 물론 많은 출판 관계자의 주목을 받았다. 책 출간 후 인터넷서점과 지역 서점 등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사은품을 증정하고, 연합 저자 북토크를 여는 등 업무를 공유하는 분야와 폭을 더욱 넓힐 계획이다.
시리즈 목록
001 피트니스 류은숙
002 서재 김윤관
003 게스트하우스 장성민
004 쇼핑 조성민
005 망원동 김민섭
근간
관성 김교석
그릇 박선영
방콕 김병운
서핑 백상현
소주 권용득
스릴러 이다혜
스웨터 김현
예능 복길
일본 철도안은별
잡지 황효진
최신가요서효인
택시금정연
편의점 임현
피아노 임경섭
호수공원 이현정
001 아무튼, 피트니스 | 류은숙
여성, 중년, 비혼, 비만, 활동가…
그 삶에 피트니스가 일으킨 홀가분한 깨달음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지은이는 그렇게 운동, 피트니스의 세계로 들어선다.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한 첫날 “개처럼 굴렀다”는 절규를 내지르지만 조금씩 더 빠르게, 더 무겁게, 더 오래 운동하게 될수록 몸에 변화가 찾아든다. 그러길 2년 가까이, 피트니스는 저자의 몸뿐 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비만의 몸에 맞는 옷이 드물고 비싸 늘 ‘아무거나’ 입던, ‘폭식’과 ‘폭음’이라는 말이 어울릴 식생활을 하던, 늙고 아프면 아무도 모르는 이국에 가 죽을 거라던, 여러 활동과 일정에 밀려 몸 챙기기는 삶의 관리 목록에 들지도 못했던, 그런 삶이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 사람 ㅇㅇ씨 맞아?” 할 만큼, 평생 먹어야 하는 혈압약을 확 줄였을 만큼, 기승전-피트니스, 만나는 사람들에게 운동을 전도할 만큼. 그리고 몸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을 만큼.
이 책은 그 피트니스에 관한, 피트니스를 애정하게 되기까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체육관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마주치는 삶의 풍경에 관한, 중년의 비혼 여성으로서 나이 들어감과 몸을 받아들이는 것,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류은숙
인권운동사랑방 창립 멤버로 시작해서 지금은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니까, 운동(movement)을 한 지 25년이 넘었다. 쉰이 될 무렵 여러 군데가 아프고 나서부터 운동(exercise)으로 피트니스를 시작했다. 그 무엇 때문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 운동이 일으킨 몸과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즐기고 있다. 『인권을 외치다』『심야인권식당』『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등 운동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몸 운동 책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책을 썼다.
002 아무튼, 서재 | 김윤관
목수, 연장 대신 책을 들다
김윤관의 직업은 목수다. 주로 서재 가구를 만든다. ‘서재’에 있어서만큼은 나름의 소신과 철학이 분명한 작가가 자신만의 연장으로(언어로) 만든(쓴) 서재라는 공간은 그만큼 흥미롭다. ‘목수가 쓴 서재 이야기’라고 하면 가구 소개나 인테리어 정보 같은 실용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총 아홉 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과 철학적인 사유들로 가득하다.
전반부는 책장, 책상, 의자, 책 등 서재를 이루는 여러 요소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책장과 책상을 짤 때는 어떤 수종이 좋은지,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과 함께 개인의 취향이나 사치와 럭셔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같은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질문거리를 던진다.
후반부에는 도서관이나 조선시대 사랑방 같은 특별한 ‘서재’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새겨진 ‘세월’이라는 한글 이야기로 시작하는 ‘공공의 서재’에서는 보르헤스와 망구엘의 일화를 예로 들며 기억과 망각 그리고 시간에 대한 저자만의 고유한 사유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또한 ‘여성의 서재’에서는 네덜란드 화가 피터 얀센스 엘링가의 그림과 수전 손택, 메릴린 먼로의 사진을 보며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책 읽기를 사회학적인 맥락에서 읽어낸다.
서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작가가 강조하는 바는 명확하다.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라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거라는 것. 목수 김윤관이 들려주는 서재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명창정궤明窓淨几, ‘햇빛이 잘 비치는 창 아래 놓여 있는’ 자기만의 정갈한 책상 하나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윤관
목수木手.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가나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기자나 세상을 구하겠다는 활동가가 아니라 그저 작은 소용이 닿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작가나 예술가가 아닌 그냥 목수 아저씨. 이름 뒤에 붙는 목수라는 명칭에 만족한다. 소명 없는 소소한 삶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낮에는 ‘ 김윤관 목가구 공방&아카데미’에서 가구 만들기와 예비 목수 양성에 힘쓰고, 저녁에는 서재에서 텔레비전을 껴안고 산다.
003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 장성민
“몇 시인지도 알 수 없는 새벽, 문득 머나먼 게스트하우스의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다면 목적지야 어디라도 좋다고 생각하며 20년간 여행을 떠난 약사. 그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얻은 이상한 위로에 관한 이야기. 그에게 게스트하우스는 이상한 우울-“인생을 바꿔놓을 만한 소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의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 그리고 그로 인한 무기력-을 달래는 유일한 방식이다.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쌓아올린 쓰레기를 알아챌 수 있는 곳, 밤이면 정원이나 사랑방에서 갈 데 없는 여행자들과 늙은 개와 동네 고양이들이 모여 친구가 되는 곳도 게스트하우스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은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선택하는 동안 당신이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별다른 노력 없이 어느 순간 그렇게 슥. 여행을 떠나기 전, 무슨 쓸데없는 짓을 했고 어떤 아픔을 겪었더라도 알고 보면 당신은 그리 나쁜 녀석이 아니며 또 잠깐의 아픔에 짓눌리지 않을 만큼 강하다는 걸 발견할 것이다. 또는 그렇게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낯선 도시에서 “사랑받는 느낌이 드는 방”을 찾아내고 안도감을 느끼며, 동네탐험을 하고 늦은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어쨌든 솔직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서로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당신은 당신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장성민
약사. 75년, 양양에서 태어나 망우리, 남양주, 영월, 동해, 구리, 횡계, 인제에서 자랐습니다. 98년, 학교를 마치고는 마석, 상계, 청담, 메릴랜드, 진건, 평택, 부천에 살았습니다. 93년부터 대만, 마카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일본, 미얀마, 몰디브,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필리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40여 개국을 여행했습니다. 17년, 지금은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파주에 살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을 여행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004 아무튼, 쇼핑 | 조성민
“나는 오늘도 바다에 갑니다”
가끔 아내가 클라이언트보다 무서울 때가 있다.
아내: 오늘 작업은 좀 했어? (무심한 듯 날리는 평범한 스매싱)
나1: 응? 별로… 예열이 덜 돼서…. (한껏 경직된 리시브)
나2: 응? 오늘은 주로 자료를 모으는 날이라…. (반 정도 거짓 리시브)
나3: 응? 오늘따라 회의 전화가 자꾸 오네…. (굴욕적인 다리 삐끗 리시브)
예열 안 된 몸뚱이를 의자 위에 앉혀놓고 작업 방향의 가닥을 잡기까지 정신적으로 어슬렁거린다. 시간이 많을 땐 잘 보지도 않던 『까사 브루투스』를 꼼꼼히 보고 시곗줄을 금속에서 직물 밴드로 바꿔본다거나 아이튠즈 라디오에서 나오는 키타곡 연주자가 누군지 찾아보는 식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날에는 아예 바다에 누워 둥둥 떠다니는 것도 꽤 삼삼한 일이다. 에메랄드빛 인터넷의 바다.
모든 쇼핑에는 사연이 있다. 소비 억제를 노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했으나 쇼핑의 촉이 더 예리해진 저자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물건들-책, 지갑, 액자, 자전거, 스탠드, 프리스비, 심지어 악보와 앱-의 이야기. 어렸을 때 도둑맞은 자전거를 못 잊어 다시 사고, 밝히기 어려운 과정으로 입수한 미용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야생무화과와 까막까치밥나무 열매 향수를 아껴가며 뿌리고, 옛 여인들로부터 소포가 오듯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책을 뜯어보고. 그렇게 쇼핑 리스트를 이어가며 물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것은 나의 이야기가 된다.
조성민
일러스트레이터. 소비 억제를 노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했으나 쇼핑의 촉이 더 예리해짐을 발견했다. 상품 페이지를 주르륵 훑어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한없이 맑아지는데 그것은 인터넷 서핑이 나의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자 휴식처이고,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나온 관심사들은 아직도 에메랄드빛 인터넷의 바다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그레고 씨의 일요일』을 쓰고 그렸다.
005 아무튼, 망원동 | 김민섭
산문가로서의 김민섭을 발견하는 즐거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대리 사회』의 저자 김민섭의 신간 『아무튼, 망원동』은 ‘망원동’이라는 공간 이곳저곳을 소요(逍遙)한 산뜻한 에세이다. 지방대 강사로서 대학의 현실을 까발린 내부 고발자 혹은 대리기사를 하면서 노동 현장을 기록한 르포 작가로 김민섭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번 행보가 다소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에세이가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서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르라고 할 때, 그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필가적 자질이야말로 이러한 글쓰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망원동과 성산동 그리고 상암동의 어느 경계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더듬는 한편,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동네가 산업화, 현대화를 거치는 동안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담백하게 적어나간다.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미산 서쪽 자락에서 자란 어느 83년생의 자기 공간에 대한 서사”라 할 수 있다. 망원동 혹은 그 인근에서 잠시라도 머물러본 독자라면 골목골목 자리한(혹은 자리했던) 상점, 음식점, 카페 등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망원동을 모르는 독자들도 공감할 지점은 풍부하다. 김민섭의 기억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80년대생들의 집단 기억이기도 한 까닭이다.
기억과 공간을 누비는 경쾌한 글맛과 더불어, 개인의 체험에서 우리 사회의 특징과 구조적 문제를 포착하는 김민섭 특유의 감수성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망원동의 화려한 변신 뒤에서 지워지고 상처받는 사람들에 주목하면서 “그들이 싸우는 동안 나는 추억만을 가진 외부인으로 존재했”다고 고백한다.
김민섭
1983년 서울 홍대입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다가 2015년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내고 대학 바깥으로 나왔다. 그 후 대리운전이라는 새로운 노동을 시작했고, 2016년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하며 『대리사회』를 썼다. 지금은 이런저런 노동을 하며 망원동에서 계속 글을 쓰고 있다.